The Birth Of British Rock 1948-1962
2022, Frémeaux & Associés (FA 5832) |
락 음악은 풍요로운 사회 청소년 문화의 산물이다. 락의 르네상스 때 우리나라는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었기에 락 음악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1962년 비틀즈가 데뷔하던 해에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한 개인소득 87 달러 (1인당 GNI)의 극빈국으로 비틀즈가 활동하던 시기에 국민 80~70 프로가 무학을 포함한 초졸 이하의 학력에다 취업자의 63~50 프로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업 국가였다. 그 뒤 가발과 신발, 섬유 산업 같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바뀌던 73년에 국내총생산 비중이 3>2>1차 산업 순으로 바뀌고, 77년에 도시와 농촌 인구가 역전되면서 산업화 15년만에 농업 국가에서 완전히 탈피한다. 이때 개인소득 1000 달러를 넘기며 빈국 딱지를 뗀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화는 60년대에는 초등학교는 완전 취학에 이르지만 중고등 학교는 개나 소나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고교 평준화가 되면서부터 입시 공부 중심의 학생 문화가 완전히 자리잡는다. (60년대에는 초등 10명 중 2.5명 정도만이 고등학교까지 진학했다. 1970년 당시 고등학생은 31만명에 취학률은 20.3 프로였다.) 60년대 초졸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이 주는 메리트가 매우 컸기 때문에 과외 바람은 이때부터 불었다. 흙수저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기에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 69년 중학교 무시험제와 74년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져 입시 공화국 체제가 완성된다. 그리고 58년생 평준화 세대가 대학이나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77년에 영화 고교얄개의 흥행 성공으로 학생 문화가 보편화 되었음을 알린다. 같은 해 입시/학생 문화가 기반인 대학가요제가 탄생한다. 청소년이면 누구나 해당하는 학생 문화는 대학생을 주체로 보는 신좌파 성격의 70년대 청년 문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대입 재수,삼수생은 여전히 학생일 뿐 우리 사회 지식인으로 보질 않았다.
일본과 비교해서 보면 비틀즈 전성기 때 일본은 풍요로운 사회였고 청소년들이 일렉 기타에 빠져 기성 세대가 일렉 추방 운동까지 벌일 정도였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가난한 청소년 대부분은 여가도 없이 경제 활동을 했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일렉 기타를 연습하는 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다. 영미락 얘기할 때는 흙수저성 강조하는 인간들이 우리나라 락 얘기할 때는 절대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과외 열풍은 있어도 악기 열풍은 한번도 없었던 나라에서 락 음악이 흥할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