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w Power - Mine To Kill (Extended Version)
1989/2015, F.O.A.D. (081) |
원래 헤비록/브리티시 메탈풍 그렇다고 해서 하드코어 펑크를 벗어나지는 않는 독특한 사운드였지만 본작은 캘리포니아의 스케이트 펑크/크로스오버 씬 영향을 받은 트렌디한 크로스오버 작품이라 평범하다.
1983년 마이클잭슨이 팝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젼이 65년의 빌보드 차트 기록을 깨자 미국 음반 산업계가 흑인과 영국인에 꽂혀있는 청소년들을 바로잡기(?) 위해 1984년부터 MTV를 중심으로 미국산 하드락/헤비메탈을 밀기 시작한다. 계속 천대하는 펑크와는 달리 메탈은 띄우기 시작하면서 메탈 본거지 두 곳이 존재하는 캘리포니아에선 스케이트 펑크 밴드들이 메탈 사운드를 수용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이런 메탈/펑크 혼합 사운드에 대해 '메탈코어'라는 이름이 붙는다. 여기서 '메탈코어'는 90년대 메탈릭 하드코어의 준말이 아니라 스래쉬가 메탈이 아닌 하드코어 펑크 씬에서 먼저 쓰였던 것처럼 크로스오버가 일어나면서 이미 이때부터 사용되던 용어이다. 예컨대 미스틱레코드의 덕무디는 '메탈코어' 컴필레이션 제작을 위해 밴드 모집 광고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본래 의미로서 최초의 메탈코어는 개인적으로는 펑크 순수주의자들에겐 메탈, 메탈 순수주의자들에겐 펑크라고 욕먹은, 엘에이의 메탈헤드들과 맞짱뜨면서 메탈 음악과도 친해진 수사이덜텐던시즈라고 생각한다. 스래쉬(스래쉬 메탈과 구별하기 위해 스래쉬코어로 부르게 됨)인 초기 DRI와는 물론 다르다.
84년은 여전히 영국의 2차 침공이 유효해서 우리나라도 머틀리크루는 몰라도 컬쳐클럽은 다 아는 때이지만, 미국의 메탈 띄우기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선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려 국민 영웅을 탄생시키는 84 엘에이 올림픽 이후에 헤비메탈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락 밴드 공연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일 먼저 주목 받은 건 헤비메탈 루키들이 아니라 라디오 지원 사격까지 받은 베테랑 들국화였다. 길보드 트로트 가수들이 보기엔 분명 방송의 절대적인 힘인데 아무튼 들국화는 우리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어 팝송을 가장 많이 소비한 때는 대입 수험생 100만 시절로 우리나라 쌍팔메탈 전성기(86-95)에 해당한다. 비교해서 보건대 70년대에는 국민 대부분이 꼬부랑 말 팝송을 듣지 않았고 락이 흥한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