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2021. 4. 9. 12:50
Louis Jordan and His Tympany Five - 1938-1940

 

2017, JSP (JSPCD905A)

 

 

 

 

History of the Record Industry, 1920— 1950s 

Part Two: Independent labels, Radio, and the Battle of the Speeds

medium.com

 

 

187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에디슨 기기인 Phonograph의 원통형 기록매체와 Emil Berliner가 만든 Gramophone의 원반형 기록매체가 경쟁을 하다가 전기 녹음 방식 도입 이후로는 원반형 기록매체, 즉 지금의 음반이 산업 표준으로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1910년대에는 악보 판매와 공연이 여전히 대세 - 악보와 공연을 장악하고 있는 '작곡가', '작가', '출판업자'들이 신매체인 음반에 대해 저작권 사용료를 잘 뜯어내기 위해 1914년 ASCAP를 결성한다 - 이던 시절이라 블루스도 이런 형식의 대중음악으로 처음 나타난다. WC Handy가 래그타임에다 블루스를 입혀 작곡한 악보와 여성 가수를 내세운 보드빌 블루스가 이에 해당한다. 보드빌 인기로 최초의 블루스 음반은 1920년 Mamie Smith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공연에 맞게 각색된 블루스와 비교해서 남부 시골의 정제되지 않은 컨츄리 블루스를 다운홈 블루스라고도 한다. 보드빌은 영화 산업 때문에 망한다. 한편 1917년에 처음 재즈 음반이 발매되고 흑인색이 덜해서 전파가 빨리 이루어진다.

 

1920년대는 라디오 방송이 음반 산업의 경쟁자로 나타난다. 음반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질 좋은 실연 (라디오 시대 뮤지션=티비 시대 탤런트)과는 경쟁이 안됐기 때문에 음반사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ASCAP는 라디오 방송국에도 로열티를 징수한다. 그래서 자금력 있는 방송국은 유명 뮤지션, 유명 악단을 고용하거나 초청해서 연주 가능한 모든 곡을 네트워크를 형성해 널리 방송하고 영세한 방송국일수록 콘텐츠도 없고 지역도 좁다. 1922년 Eck Roberstson, 1923년 Sylvester Weaver가 각각 최초의 힐빌리, 최초의 컨츄리 블루스 음반을 발표하나 둘다 인스트루멘탈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필요가 없는 전기 녹음 방식으로 바뀐 20년대 후반부터는 남부 시골의 주크조인트나 배럴하우스, 반댄스장으로 직접 가수 헌팅을 하러가면서 힐빌리와 블루스 음반이 많이 제작된다. 한편 찰스턴 댄스의 유행으로 재즈는 더욱 인기를 끈다. 나중에 빅밴드 스윙의 린디합으로 이어진다.

 

1930년대는 대공황과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로 음반 산업이 타격을 입지만 계속 신장세를 보인다. 남부 힐빌리 음악에서 헐리우드 카우보이/서부 영화 지원 사격을 받는 웨스턴 음악으로 무게 중심이 넘어가면서 이후 컨츄리앤웨스턴으로 불리게 된다. 여전히 라디오는 실연 생방송 중심이지만 음반 방송이 증가해 30년대 말에는 디제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라디오보다 쥬크박스가 뮤지션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시작한다.

 

1940년 ASCAP가 기존 개별 노래당 방송 횟수에 따라 부가하던 로열티를 1년 뒤부터는 전체 레퍼토리에 대한 포괄 사용권을 주되 방송 수익의 고정 10프로를 요구 이 금액이 기존 로열티의 두배에 해당하자 라디오 방송국들이 반발 이미 BMI 결성의 배후가 되어 대비를 마친다. 이 분쟁에 의해 연방정부의 중재로 타협하기까지 1941년 1월부터 약 10개월간 방송국들이 악보와 공연시대부터 미국 대중음악을 장악해온 ASCAP의 전국구 주류 음악 대신 BMI의 로컬 힐빌리와 레이스 음악을 집중 방송한다. 또한 1942년에는 셀락이 군수물자로 지정되어 메이저 레이블의 물량 공세에 제동이 걸리면서 시장지배력이 약화된다. 거기다 쥬크박스 사업의 호황으로 미국 뮤지션 최대 노조인 AFM이 음반 산업에 반기를 들어 - 미국 저작권법은 음반제작자는 '녹음물'에 대한 저작권자가 되지만 실연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 1942년부터 음반 제작 활동 중단에 들어가 1944년까지 이어지는데 이 공백기 동안 AFM 소속이 아닌 주로 남부 시골 무명 뮤지션들과 뮤지션 신분이 아닌 가수들만 자유롭게 음반 제작을 하게 된다. 특히 빅밴드 지휘자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가수들의 지위가 급상승하여 빅밴드 와해를 더욱 부추긴다. 이 사건들은 결국 로컬 인디 레이블과 비주류 음악 성장의 발판이 되어 전후 미국 대중음악을 기악 중심에서 성악 중심의 트래디셔널팝, 컨츄리앤웨스턴, 리듬앤블루스로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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